“한국의 무한의 기둥”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루마니아 조각가 베노네 올라루(Benone Olaru)가 한국에 직접 와서 조각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설치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우리 루마니아어과 1회 선배님들이 돈을 모와서 학과에 기부함으로써 마침내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하네요. (1회 선배님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꾸벅^^)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의 높이가 8m에다 무게 또한 33톤에 이르는 대형 조각물인데, 현재 우리대학 캠퍼스 한 중앙인 명수당 둑에 설치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 루마니아어과 모든 재학생들의 자존심이랍니다. (아직까지 보지 못한 분이 계시면 아래 사진을 참고하세요!^^)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루마니아의 천재조각가 브른쿠쉬(Constantin Brâncuşi, 1876-1957)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로댕과 브른쿠쉬는 같은 조각실에서 일한 동시대의 인물로 세계적인 천재 조각가이다.
브른쿠쉬는 1902년 루마니아를 떠나 뮌헨, 취리히 등을 거친 후 1904년 파리에 있는 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였다. 2년 후 학교를 중퇴한 그는 한동안 로댕의 화실에서 작업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는 아무 것도 자랄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로댕의 요청을 뿌리치고 그곳을 떠난다.
브른쿠쉬는 세계 조각예술사에서 민속예술(folklore)을 조각예술에 도입한 최초의 작가였다. 그는 기존의 민속예술세계나 아프리카 민속예술세계를 모방하지 않고 자신이 체험한 생생한 경험들을 작품 속에 표현하였으며, 여러 가지 주제의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하기 보다는 항상 어떤 하나의 주제로 되돌아가곤 했다. 한 예로, 브른쿠쉬의 대표작인 <무한의 기둥>이 완성되기까지 19년이 걸렸으며 새(bird)를 주제로 하는 작품은 무려 28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브른쿠쉬의 작품에서 비상(飛上)과 관련한 테마는 ‘새’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작품에서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초자연적인 새(Măiastra)>와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초자연적인 새’가 거만한 움직임이나 교만함 혹은 도전적인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자기 머리를 들기를 원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는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한 이후에야 비로소 도약하는 비상을 통합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8면체의 철제 모듈 17개로 이루어진 29.33m 높이의 <무한의 기둥>(Coloana infinitului)은 <침묵의 탁자>(Masa tăcerii), <키스의 문>(Poarta sărutului)과 함께 루마니아의 트르구-지우(Targu-Jiu) 시 공원 내에 전시되어 있다. 종교학, 신학 분야에서 20세기 최고의 권위자였던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이 기둥을 ‘세상의 중심축(Axis mundi)’라고 명명하였다.
브른쿠쉬의 모든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제인 ‘완벽함의 추구’는 ‘무한의 기둥’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의 모티프는 루마니아 민속예술, 즉 하늘을 지지하는 기둥이 존재한다는 고대 루마니아인들의 믿음에서 시작된다. 즉 이 작품은 하늘과 대지 사이의 ‘연결’을 의미하고 있다.
브른쿠쉬는 무한의 기둥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지 오랜 세월 동안 고심하였다. 이유인 즉, 자신이 원했던 완벽한 형태가 ‘상승(上昇)’과 ‘비상(飛上)’ 그리고 ‘초월(超越)’의 상징성을 모두 통합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브른쿠쉬가 무한의 기둥을 만드는데 있어 순수한 형태가 아닌 영원으로 반복되는 장사방(長斜方, rhomboidal shape)의 형태를 택함으로써 상승의 상징성을 분명하게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되어 있는 비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일생동안 비상의 본질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않았다... 비상,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처럼 브른쿠쉬 작품에서 표현되어 있는 비상의 의미는 행복 혹은 기쁨이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서 그는 상승, 초월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벗어남을 상징화했으며 또한 비상은 고통, 어려움의 파괴 그리고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항상 비상의 본질이 어떤 형태일까에 몰두했던 브른쿠쉬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 재료인 돌을 무게의 원형(archetype)을 사용함으로써 비상을 설명하려 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무거움(돌)에 가벼움(비상)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결국 브른쿠쉬는 라틴어로 ‘모순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라는 철학적 개념을 자신의 작품에서 완성시켰는데, 즉 같은 물질(돌 조각품)에서, 비상과 그 반대 개념인 무거움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미주한국일보에 기고한 박정오 교수님 칼럼 발췌)
브른쿠쉬의 3대 걸작은 ‘침묵의 탁자’와 ‘키스의 문’ 그리고 ‘무한의 기둥’입니다. 이 세 작품을 본떠 우리대학 글로벌캠퍼스에도 “한국의 침묵의 탁자”, “한국의 키스의 문” 그리고 “한국의 무한의 기둥”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1) 침묵의 탁자(Masa tăcerii)
이 작품은 돌로 제작된 둥그런 탁자에 12개의 의자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아주 다양하지만, 우선 둥그런 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완벽함(perfecţiune)’입니다. 이 외에도 이 작품은 ‘예수와 12제자’로 해석이 가능하고, 예수님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 ‘창조(creaţie)’ 즉 ‘루마니아어과의 탄생’이나 ‘루마니아어과에 신학생들의 입학’ 등으로 재해석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키스의 문(Poarta sărutului)
키스는 ‘성인으로의 성숙’을 의미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우리 ‘루마니아어과가 성숙’해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루마니아어과 학생들이 ‘루마니아를 사랑하는 과정’으로 재해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무한의 기둥(Coloana infinitului)
무한의 기둥은 브른쿠쉬의 철학사상이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완성되기 까지는 무려 19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루마니아어과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하는데 있어 끝없는 발전한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 작품 모두가 우리 대학에 설치되면 다음과 같이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루마니아어과에 입학한 학생들이 루마니아를 알게 되고, 루마니아 언어를 공부를 하면서 루마니아를 사랑하게 되고, 또한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하면서 무한한 발전을 이룰 것이다.”